고종석의 문장  






음악은 모차르트의 죄놈으로 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9번이지요. 밝고 대담한 출발과 그 뒤로 생기있는 전개가 마음에 드는 곡입니다. 이 곡처럼 자유로우면서 생기넘치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 작가들의 이름을 읊어 보겠습니다. 이 작가들을 생각하시면서 대표작이 뭐였는지 문장은 어땠는지, 글맛은 어떤지, 책에 보이는 작가님들의 얼굴은 어땠는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종석, 정유정, 김동리, 김훈, 도진기, 김애란, 장정일, 김현, 장강명, 신경숙, 배수아, 이문열, 손아람, 황석영, 박범신, 박민규, 좌백, 진산, 조정래. 이름을 읽어가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고종석 선생님, 트위터 좀 줄이셨으면 싶지만, 저번에 그 말은 통쾌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신경숙 선생, 박민규 선생, 이 작가들의 이름을 우리는 다시 읽을 수 있을까요? 황석영 선생은 늘 한국문단의 최정점에 계시죠. 손아람 혹은 손앎 작가님, 차기작이 정말 기대되는 작가입니다. 이 분들의 글쓰기는 어떨까요? 어떤 말맛을 지니고 글을 쓰고 있을까요.


 이 작가들이 이야기했던 ‘글을 쓴다는 것’에는 김훈 선생님의 ‘라면을 끓이며’와 고종석 선생님의 ‘고종석의 문장’을 꼽아볼 수 있을 겁니다. 굳이 이 두 작품이냐 물으신다면, 최근작이어서 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고종석 선생은 많은 글을 쓰시고 신문기자, 시사주간지 기자로 활동하신 전력이 있는 만큼 단문을 선호합니다. 글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문장을 축약해서 한 문장 한 문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고종석 선생의 글쓰기입니다. 기자분들이 많이 쓰는 방법인데, 무미건조하게 글을 쓰기 위해서 최대한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식입니다. 주진우 기자님의 글이 대표적이죠. 취재는 잘 하시지만, 문장이 맛깔스럽지가 않습니다. 마치 발표수업에 앞에 나간 학생이 교수님의 질문에 안 걸려들기 위해서 어휘를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참고문헌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적확한 표현만을 골라 사용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의견에 반대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말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어휘, 표현이 사용되어야 하지 말맛을 죽여버린 간결한 문장이 아름답지도 못한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입니다. 이 지적에 대답하기 위해서 고종석 선생의 책에서 문장 몇 가지를 인용하겠습니다. 「“붉은색이 제 상징의 정원에 공산주의를 처음 맞아들인 것이 전제인지 나는 모른다.” 이건 멋 부리려다 조금 오버한 경우입니다. ‘상징의 정원’이란 표현을 썼는데 그 말 자체는 멋있어 보입니다.........제가 다시 쓴다면 ‘제 상징의 방에’또는 ‘제 상징의 집에’ 또는 ‘제 상징의 마당에’ 이렇게 쓸 겁니다.」여기에서 보자면 단순히 문장을 줄이면서 긴장감을 주는 것만이 그의 글쓰기는 아닙니다. 표현에 있어서 더 생동감 있는 표현을 사용하자는 것이 이 글의 의도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단순히 한 대목만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확대해석이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적’이라는 말은 일본사람들이 영어 접미사 ‘-tic’을 ’테키‘라고 번역한 걸 우리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써야만 할 때도 있지만, 뺄 수 있다면 빼십시오. 뺄 수 있는데도 ’-적‘을 쓰면 한국어다움을 잃습니다.......’적‘ 못지않은 한국어의 적이 관형격 조사 ’의‘입니다....... 사실 일본 사람들은 이 ’의‘를, 일본어로는 ’노‘라고 합니다만, 이 말을 기이할 정도로 많이 사용합니다. 일본어에서는 이게 어색하지 않지만 한국어로서는 어색합니다.」이러한 내용으로 미루어 보자면 고종석 선생이 이 강연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은 진정으로 ’한국어‘에 맞는 표현방법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자면, 고종석 선생이 일전에 트위터에서 하셨던 말을 언급해 보겠습니다. “ㄱ이라는 음운은 가로막고 어감으로 끊어내는 음운이다. ㄴ이라는 음운은 뭔가 이어가고 문장을 예상하게 만드는 그런 음운이다. ㄷ은 닫는 의미가 강하다. 문장의 끝을 ~다 로 많이 끝맺는 것을 보더라도 ㄷ은 닫음의 음운이다. ㄹ은 이어가는 음운이다.....” 오래된 기억이라 흐릿하지만 음운의 효과를 고려해서 단어를 골라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이었습니다. 어디한번 예를 들어 볼까요.

“그거 다 조작판 아니냐.”

“그거 다 짜고 치는거 아니냐.”

 한번 입 밖으로 내어서 말해 보십시오. 앞의 문장은 뒤의 문장에 비해서 딱딱하고 단단하게 느껴집니다. 이 맥락을 여럿 이어붙인다면 그 조작판은 아마도 제법 기계를 사용하고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조작판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할 겁니다. 뒤의 문장을 보자면 앞의 문장에 비해서 명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흔히들 ‘고스톱’이라고 부르는 도박의 이미지가 확연하게 떠오릅니다. 더 친숙한 느낌을 주고 친구들끼리 자잘한 내기를 하다가 장난스런 음모를 꾸미는 이미지가 더 강합니다. 이런 이미지들을 잘 짜 맞추면 신문에서 흔히들 ‘틀 짜기’ 혹은 ‘프레이밍’이라고 부르는 기술의 기초가 됩니다. 이렇듯 우리가 글을 읽고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이미지는 수많은 음운의 이미지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의 글이 더 잘 읽히는 것도 같은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신선한 부분을 꼽아보자면 '논리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접속부사를 굳이 사용하지 마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접속부사를 남용하는 글쓰기는 글에 논리성을 강제로 부여하는 글쓰기라는 통찰입니다. 좋은 글은 문장들을 다 떼어놓고 보아도 인과관계가 명확한 글일겁니다. 글을 쓰는이가 많은 생각을 담아내었기에 명확한 논리로만 구성된 글이 좋을 글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문장과 문장사이에 긴장이 있고 그 긴장을 매번 뛰어넘어 가면서 글을 독자의 시선으로 재조직할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접속부사가 하는 일은 다음 문장을 예측할 수 있게 해서 생각의 과정을 줄여주는 일을 합니다. 독자들의 생각을 줄여주고 다음 독자의 생각을 글이 대신해줍니다. 이런 방법은 설명하는 글에 더 적합합니다. 논리를 요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대개의 글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논리로 더 쉽게 끌어들여서 다른 생각을 어느정도 통제하고 쉽고 빠르게 이기겠다는 의도가 아니고서는 이런 글쓰기는 지양해야 할 겁니다. 결국 좋은 글이란 작가도 독자도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모든 뛰어남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타고나는 겁니다. 음악이나 수학은 재능을 타고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수학이나 음악과는 다릅니다. 충분한 훈련이나 연습으로 크게 개선할 수 있습니다........재능도 필요하지만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글쓰기 연습을 하는 겁니다.」이 문장은 이 책의 내용을 이끌어갑니다. 그 ‘글쓰기 연습’에 맞는 것은 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한 문장에서 불필요한 표현 들을 반복해서 쓰고 있지는 않은지, ‘~적’이라는 음절이 많이 들어가서 글의 내용이 뚝뚝 끊기는 느낌이 나는지 끊임없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생각하고 쓴 글은 술술 읽히고 음성이미지가 확연히 드러나지만, 생각을 거치지 않은 글은 거칠고 조악합니다. 그 내용이 현학적인 내용일 경우에는 더욱 읽는 사람을 배려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배려하는 방법을 잊기도 합니다. 그런 일을 조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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